지식이 아니라 "공감"을 전하는 9명의 정신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그대의 마음에 닿았습니다>를 추천합니다. 이런 정신건강 책이 출간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환자들 돌보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내기에도 빠듯한 분들이 시간을 쪼개어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준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책이 필요하여 작년부터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환우 관련된 일을 맡게 되어 이해가 필요한데, 경험이 전무하여 간접적으로라도 이해할 필요를 느껴서 심리학 책을 읽어야 하나 하며 서점에 가서 뒤지고 뒤져도 없던데 그때는 출간되기 전이었더라고요. 올해 1월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도서입니다.
집필에 참여한 정신과 의사들은 모두 진료실 너머 고통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아담한 진료실만이 아니라 극한의 감정이 들끓는 재난과 트라우마 현장, 희망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지원 시설, 마약 사범이 수감된 교도소, 남모를 우울과 불안이 떠도는 대학 교정, 정책이 세워지는 국회...
몸이 아픈 환자가 아니라 "고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아픈 가족, 아픈 이웃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가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모든 독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자: 9명의 정신과 의사 (김은영, 정찬승, 심민영, 천영훈, 백종우, 이정현, 백명재, 전진용, 정찬영)
intro 중에서
내가 그대를 돕고 그대가 나를 돕는다. 내가 그대를 치유하고 그대가 나를 치유한다. 내가 그대를 살리고 그대가 나를 살린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 위에는 의사도 환자도 없다. 이 고통의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돕는, 사람과 사람의 동행이 있을 뿐이다.
목차
1부 그대의 마음에 나의 공감을 보냅니다
실패하고 방황해도 괜찮아 / 청년정신건강 (김은영)
그린슬리브스 / 애도 (정찬승)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되다 / 트라우마 (심민영)
판도라의 상자 / 중독 (천영훈)
죽고 싶은 사람과 살리고 싶은 의사 / 자살예방 (백종우)
2부 그대의 상처에 우리의 위로를 보냅니다
감염병은 재난이다 / 코로나19 (이정현)
군대를 떠날 수 없었던 의사 / 군정신건강 (백명재)
우연한 만남, 조금 다른 이별 / 북한이탈주민 (전진용)
용서 이야기 / 국가폭력 (정찬영)
* "다른 애들은 다 뭔가 하나씩 잘하는 것도 있고 자기 목표가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별게 없어요. 적당히는 하는데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사람들한테 관심도 없고 너무 외로워요."
...
정신과를 찾는 학생들은 "이것을 하면, 약을 먹으면, 남들만큼 잘할 수 있어요!" 식의 드라마틱한 해결책을 기대한다. ...
*부모의 소망이 전해지는 방식에 강요와 강압이 있었는가. 부모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 때도 충분한 사람과 관심을 줬는가. 가망 없어 보이는 길에서 헤매거나 진창에 빠져 있어도, 심지어는 공격하거나 반기를 들어도 보복하지 않고 그 존재에 변함없는 지지를 해줬는가. 균형 위에 있을 때, 아이들은 부보의 소망을 자신의 고유한 소망과 조화롭게 통합한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부모에게 때때로 저항하거나 타협하기도 하면서 용기있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 늘 신중하고 조용한 품성의 어머니가 보인 반응은 실로 의외였다.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며 제발 공개해 달라고, 실명으로 해도 좋으니 내 아들의 이야기를 알려 달라고, 조용히, 그리고 힘주어 대답했다. 그 표정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 분노가 섞여 있었다. ...... (발달장애 아들의 스트레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놓쳐 버린 안타까움, 회한, 자책, 분노 등으로 얼룩진 유가족 어머니의 어두운 터널을 함께한 이야기. 어머니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었음을 깨닫고 마지막 터널을 나오기까지 함께한 이야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지닌 사람을 돕는 유일한 길은 공감이며, 공감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나는 열심히 들었다. 부모 또한 열심히 얘기했다. 몇 개월에 걸쳐 말하고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은 도무지 머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 하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자 다른 트라우마와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그녀는 어렸을 때 겪은 트라우마를 다루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겪은 일을 자세히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입 밖으로 내뱉기조차 두려워했지만 오로지 낫고 싶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오래 전에 신세를 진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 한 분이 생각납니다.
대학 신입생 때 고아원 후원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일찻집 열 준비를 하며 스폰서를 구하던 때 일입니다. 서클 임원들끼리 각자 스폰서를 구해 보자고 했는데, 저,는 대전 출신이 아니라서 딱히 아는 소위 사장님, 대표님이라 할 만한 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전역부터 당시 충남 도청에 이르기까지 일직선 도로 양 옆에 있는 병원이나 가게들을 방문하여 무작정 일일 찻집 취지를 말씀드리고 광고 후원을 부탁드렸습니다. 저는 대전역부터 출발하여 충남도청에 이르기까지 왼쪽 도로변을 맡았습니다. 계속 퇴짜를 맞다가 거의 막바지에 신경정신과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병원명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의사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는데, 제가 불쌍해 보였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거 같고 120% "공감"을 해주신 것 같아요. 몇 마디 사족을 붙이지도 않았는데, 너무나도 흔쾌히 후원을 승낙하여 제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그날 저는 아마 날아서 서클룸에 갔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한테 칭찬도 받고, 엄청 신나서 티켓도 제일 많이 팔고, 다같이 신바람나게 일일찻집도 대성황리에 운영하고, 고아원 아이들을 대학교 캠퍼스로 초청하여 드넓은 잔디밭에서 즐겁게 운동회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 지금도 어딘가에서 멋지게 살고 계시겠지요?!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이 책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이 만난, 들려주는 이야기 속 사람은 나이거나 가족이거나 지인이거나 친구이거나 이웃입니다. 책을 읽으며 저도 치유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저도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생각났고, 이해되고, 자유로워졌습니다. 아픈 누군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살펴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은 느낌도 있습니다.